CORAM DEO(대하 26:16-23)
웃시야는 강성해지자 교만한 마음이 든다. 교만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은 성전 향단에 분향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제사장 아사랴와 80명의 제사장들이 들어가서 이를 제지한다. 아사랴는 분향을 하기 위해서는 구별 받은 아론 자손의 제사장들만이 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웃시야는 오히려 화를 낸다. 그때 웃시야의 이마에 나병이 발병한다. 하나님이 그를 치신 것이다. 나병이 발하자 제사장들을 속히 웃시야를 성전 밖으로 쫓아내었고 자신도 하나님의 징계를 깨닫고 나가게 되었다. 이후 그는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별궁에 거하다가 죽어서도 왕의 묘실에서 떨어진 곳에 따로 묻히게 된다. 분향이 왜 이렇게 큰 문제가 될까? 분향이라는 행동만 보면 작은 행동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것이다. 결코 작은 행동이 아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처럼 금지명령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에 따른 책임과 형벌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금하신 명령을 깨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교만의 문제는 곧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다. 단지 누군가와 비교하여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 상대방은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자이다. 그렇기에 결코 상대를 무시하거나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것이 반복되면 종국에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까지 당돌히 나서는 것이다.
그러나 웃시야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피조물일 뿐임을 깨달았어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자각하지 못하는 웃시야에게 나병이 들게 함으로 그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게 하신다. 분향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왕위뿐 아니라 종교적 권위도 모두 자신의 것으로 취하려 하자 하나님은 나병으로 그를 징계하신다. 이제 그는 성전에서 쫓겨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왕위에서도 쫓겨나고 왕궁에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별궁으로 격리된다. 외로운 마지막을 보내고 죽어서도 왕들의 묘실에 묻히지 못하고 따로 묻히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언제나 서야 한다. 내 앞에 있는 상대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우리 앞에 보이는 대자연도 하나님이 지으신 작품이다. 그렇기에 누구 앞에 어디에 서든 우리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겸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