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장중에 있는 고난의 현장(단 3:24-30)
만일 우리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떤 기도를 했을까? 아마 이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기도했을 것이다. 처음 왕이 신상을 만들려고 할 때 부터 기도하지 않았을까? 왕이 마음을 돌려 계획을 없었던 일로 만들기를 기도했을 것이다. 그 다음엔 모든 대신들을 광장으로 불러 엎드려 절하라고 할 때는 자신이 일직이 걸려서 그 자리에 없어도 되든 아니면 이런저런 상황으로 자신이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기를 기도했을 것이다. 모두가 절하고 자신들만 절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눈을 가려서 자신들이 엎드리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하기를 구했을 수도 있다. 또 자신들이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았기에 종국에는 왕의 마음이 돌아서든 자신들이 풀무불에 들어가기 전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불이 꺼지기를 구했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이 세친구들도 지금 나열했던 기도들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택하신 방법은 이런 모든 경우의 수가 아니었다. 만일 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은 기도를 지속적으로 했다면 절망감이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끝까지 신앙을 지켰고,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통해 극적 반전을 일으키신다.
세 친구는 엄청난 열기를 내뿜는 풀무불 속에 던져진다. 그곳에는 왕을 비롯해 많은 모사들 그리고 모든 대신들이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왕은 모든 사람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내 말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이와 같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런데 불 속에 던져진 세 친구는 터럭하나 상치 않고 불 속에 있게 된다. 그 현장의 수많은 사람들은 왕의 위세에 눌려 왕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를 경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게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곳은 끔찍한 현장이 아니라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현장이 된 것이다. 왕의 신상의 낙성식장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 된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광장이 되었다. 만일 세 친구가 풀무불에 던져지는 일이 없었다면 이런 놀라운 일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때로 우리의 극한 삶의 현장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고백하는 현장이 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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