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답(18:28-19:16)

 

무엇을 보고 무엇을 소망하는가에 따라 사람들의 인생은 이미 결정되어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나의 목적이라면 그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것이고 자신의 나라를 소망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다.

모든 믿는 자들은 매주 아니 예배 때마다 신앙고백을 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된다. 신앙고백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고백인데 이 속에 두 명의 사람이 등장한다. 하나는 마리아이고 다른 하나는 빌라도이다.

빌라도는 예수님과 대화를 하지만 변화되지 않는다. 물론 그는 두려워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인간적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다. 오히려 인간적 두려움이 그를 압도하여 아니라고 생각하는 결정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간다. 빌라도는 예수님과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그는 점점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가고 있었고 결국 내리지 말아야 할 결정을 내리고 만다.

우리의 인생은 단번에 결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내가 어디로 더 끌리는지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꿈꾸고 원하는 것으로 달려 가는지. 처음 발을 뗄 때는 힘이 든다. 그러나 방향을 정하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점점 가속이 붙어 나중에는 돌이키기 어렵다. 우리는 내 인생의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궁금해한다. 그러나 이미 내가 무엇을 보고 어느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알고 있으면 그 결과는 너무도 분명해진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품고 있으면 결국 나는 하나님 품에 안길 것이고 하나님을 등지고 내 욕심껏 살기를 원했다면 그 끝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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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안에서 행하라(요삼 1:1-15)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진리는 예수님 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은 예수님 안에서 행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행하는 것이 예수님 안에서 행하는 것인가? 그것은 악이 아닌 선을 행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는 선행 중에서 형제들을 맞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즉 손님 대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손님 대접이 어려운가? 우리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손님 대접을 못하는 이유는 우리집 형편이 어려워서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본문에는 책망을 받는 디오드레베가 등장한다. 그런데 그를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자라고 한다. 그의 이러한 성격과 손님 대접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손님 대접은 내 사정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좋아하고 그를 존경하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대접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나만 못하다 생각되면 대접을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아니 오히려 불편하고 귀찮아지는 것이다.

창세기 18장에는 천사들을 대접한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신약에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여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씻었던 마리아가 나온다. 이들은 모두 상대방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상대방을 섬긴 것이다. 반면 다윗을 노하게 했던 나발도 있다.

진리 안에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상대방을 존경하고 그를 사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그를 높이길 원하신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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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AM DEO(대하 26:16-23)

 

웃시야는 강성해지자 교만한 마음이 든다. 교만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은 성전 향단에 분향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제사장 아사랴와 80명의 제사장들이 들어가서 이를 제지한다. 아사랴는 분향을 하기 위해서는 구별 받은 아론 자손의 제사장들만이 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웃시야는 오히려 화를 낸다. 그때 웃시야의 이마에 나병이 발병한다. 하나님이 그를 치신 것이다. 나병이 발하자 제사장들을 속히 웃시야를 성전 밖으로 쫓아내었고 자신도 하나님의 징계를 깨닫고 나가게 되었다. 이후 그는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별궁에 거하다가 죽어서도 왕의 묘실에서 떨어진 곳에 따로 묻히게 된다. 분향이 왜 이렇게 큰 문제가 될까? 분향이라는 행동만 보면 작은 행동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것이다. 결코 작은 행동이 아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처럼 금지명령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에 따른 책임과 형벌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금하신 명령을 깨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교만의 문제는 곧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다. 단지 누군가와 비교하여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 상대방은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자이다. 그렇기에 결코 상대를 무시하거나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것이 반복되면 종국에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까지 당돌히 나서는 것이다.

그러나 웃시야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피조물일 뿐임을 깨달았어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자각하지 못하는 웃시야에게 나병이 들게 함으로 그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게 하신다. 분향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왕위뿐 아니라 종교적 권위도 모두 자신의 것으로 취하려 하자 하나님은 나병으로 그를 징계하신다. 이제 그는 성전에서 쫓겨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왕위에서도 쫓겨나고 왕궁에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별궁으로 격리된다. 외로운 마지막을 보내고 죽어서도 왕들의 묘실에 묻히지 못하고 따로 묻히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언제나 서야 한다. 내 앞에 있는 상대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우리 앞에 보이는 대자연도 하나님이 지으신 작품이다. 그렇기에 누구 앞에 어디에 서든 우리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겸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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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13:13-22(나팔을 불자)

 

고대 왕들은 전쟁을 통해 나라를 확장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나라의 부강은 군사력으로 대변되는 힘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남 왕국 유다의 아비야 왕과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사이에 전쟁이 발생한다아비야는 보통의 전쟁에서처럼 군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적을 능욕하지 않는다다만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고 반대로 북 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았음을 말한다이러한 일장 연설 중에도 북 왕국의 여로보암 왕은 2배가 넘는 군사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유대 군사들 뒤로 군사를 움직여 매복하도록 지시한다전혀 다른 상황과 전쟁에 대한 대처를 보여준다일반적인 전술로 보면 이미 전쟁은 끝났고 북 왕국의 승리가 예상되는 상황이다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정 반대다전쟁이 발발한 순간은 유다 진영을 이스라엘이 앞뒤로 둘러싸고 있다이스라엘은 호기롭게 달려들고 반대로 유다는 당황하고 두려움에 떠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이내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 소리친다처음부터 그들은 전쟁을 자신들의 손을 의지해서 하려고 하지 않았다그렇기에 군대 안에도 제사장들이 속해있다제사장들은 일제히 나팔을 분다마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나팔을 부는 것처럼 전쟁터에서 그들은 하늘높이 나팔을 분다그리고 군사들은 나팔소리와 함께 함성을 지른다군악대의 진격 나팔에 소리에 소리를 지른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의 나팔소리에 하나님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그 소리는 기도소리였고 하나님을 향해 열렬히 부르짖는 소리이다하나님은 그들의 소리에 응답하신다그리고 전쟁은 너무도 쉽게 끝이 나고 만다. 40만 군사 대 80만 군사의 전쟁은 40만 군사의 대승으로 끝이 난다적진의 80만 대군은 사상자만 50만에 이르는 처참한 패배로 끝이 난다당신은 아직도 내가 무엇인가 준비가 되지 않아 실패를 거듭한다고 생각하는가아니면 재능이 없어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다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 서 있는지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다음의 문제들은 따라오는 것이다기준을 잡아야 줄을 서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해 내가 먼저 설 때 다른 것들이 질서 있게 움직이게 된다내 신앙의 정립을 위해 무엇보다 먼저 나팔을 불자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소리를 높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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